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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9 혁명 이란? 잊지말아요!!
    일상다반사 2022. 4. 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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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 혁명(四一九革命) 또는 4월 혁명(四月革命)은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을 하자,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대규모의 시민들이 참여하며 전국적으로 확대된 반독재투쟁이자 혁명을 말한다. 부정 선거 당시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은 4할 사전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의 부정을 저질렀다.

     



    3·15 마산 의거에 참여한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월 11일 아침에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오른 것이 부산일보를 통해 보도되면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지며 격화되었다.[4] 4월 18일에는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 후 귀교 중 피습을 당하기도 했으며 4월 19일 경찰이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발포 이후 시위대는 무장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섰다. 전국민적 저항과 군지휘부의 무력동원 거부에 봉착한 대통령 이승만이 4월 26일 하야를 발표함으로써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몰락하였고, 이 혁명의 결과로 과도 정부를 거쳐 6월 15일(6·15 개헌)에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혁명 직후 개정된 헌법에 따라 국회 의원은 참의원과 민의원으로 구성되었다. 새 헌번에서 치른 총선에선 민주당이 승리하였고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윤보선을 선추 윤보선이 지명한 장면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무총리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부정 선거 책임자와 그 과정에서 부정 축재를 한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실패하였으며 민주당 내의 구파와 신파 분열이 일어났고 구정치인의 활동 금지와 부패한 공직자 처벌을 명분으로 곧 군사 정변이 일어나게 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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